▲ 성민규(정명고 2년, 국제신종거미 발견)

곧 고3이 되는 저에게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특별한 취미가 있습니다. 바로 ‘거미채집 및 사육’ 어쩌면 거미를 싫어하는 분들께는 다소 혐오스럽고 괴짜스러운 취미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리 여덟 개 달린 그 조그만 생명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을 퍽 자랑스러운 취미로 생각해 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이상한 취미를 갖게 되었냐고 물으신다면 부끄럽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부천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자라왔는데, 제가 자라난 부천은 녹지비율로 말하자면 전국 최 하위권에 달하는 ‘회색 공간’입니다. 당연히 이곳에서 제가 경험한 자연이라고는 양버즘나무 가로수와 놀이터에 기어 다니곤 하던 일본왕개미, 그리고 겨울에 놀이터 벤치 밑에 서로 촘촘히 붙어 겨울을 나곤 하던 무당벌레들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취미가 낚시였다는 것은 저에겐 천만다행인 것이었습니다. 주말에 아버지를 따라나서 낚시터로 가는 것은 물가 습지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아주 작은 생물들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학교 과학반에서 매일 저녁까지 자습을 하다 보니 물가에서의 행복한 경험들은 제 머릿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제 눈길이 향했던 곳은 해만 지면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밤하늘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매일 밤 운동장에는 과학반 선배님들이 구경 6인치에 달하는 커다란 망원경을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모아 천문 동아리를 만들고 함께 두꺼운 천문학 관련 서적들을 읽고 늦은 밤까지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아름다운 성운, 성단, 별들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늦게까지 저희를 돌보아주시고 때로는 멀리 관측지에서 별을 보는데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신 과학 선생님,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셔서 맛있는 저녁을 제공해주시고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자연과 별 천문대 대장님 덕분에 저희 모두는 천문학도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년기의 자연에서의 경험은 저를 자꾸 생명들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호기심에 방문했던 거미박물관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세계를 접하고 그 곳 관장님이신 박사님께 거미학을 수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박물관은 산자락에 위치했고 그곳에서 발견한 돌 틈의 작은 거미들 그리고 계곡에서 뛰어다니는 생물들은 저를 다시금 흥분시켰습니다. 그리고 천문학과 생물학의 사이에서 결정할 시간은 곧바로 다가왔습니다. 이때쯤 과학반 천문 동아리 학생들은 모두 도전하는 천문올림피아드가 열렸습니다. 다행히도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올림피아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본선 일정이 저의 첫 거미채집 여행이었던 여서도 거미채집 일정과 겹쳐버린 것이었습니다. 둘 다 일정을 조절할 수 없었던 까닭에 선택해야만 했는데, 저는 생명의 세계로 귀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고되는 신종거미를 발견한 행운

이렇게 거미를 공부하게 된 저는 2년 전 조사를 나선 김포공항습지에서 예기치 못한 성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종’거미의 발견입니다. 처음엔 단순히 ‘미기록종’, 즉 국내에 처음 보고되는 거미인 줄로 알았는데, 더 살펴보니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고되는,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거미였습니다. 이 거미를 발견하게 된 김포공항습지를 알게 된 것은 2013년 봄으로, 그때 저는 물속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인 물거미(Argyroneta aquatica) 라는 신비로운 거미 종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거미를 공부하는 곳인 한국거미연구소에서는 물거미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물거미 생태를 연구하고 번식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물속에 공기 방울을 옮겨가며 집을 짓고 먹이도 그 안에서 먹으며, 완전히 수중생활을 하는, 그 자체로 신비로운 이 종이 사는 곳은 국내 단 한곳, 경기 연천군 은대리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습지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미가 그곳에서만 서식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도권에 물거미가 살만한 습지가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 신종거미

이때 접하게 된 영상이 ‘EBS 하나뿐인 지구-김포공항 담장 너머에 습지가 있다’였습니다. 영상에서 보이는 넓은 습원에서 개구리, 새, 물고기 등등 각종 생물들이 뛰노는 모습은 저에게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더욱 절 기쁘게 한 사실은 그동안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만 보아 왔던 하늘의 제왕, 맹금류들이 서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몇 주 후 바로 탐사계획을 잡고 모종삽, 스위핑 네트, 관병, 핀셋, 루빼와 같은 채집도구를 가방에 잔뜩 싸들고 습지로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본 김포공항 습지의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흰 구름 떠가는 새파란 하늘 아래 춤추는 갈대, 억새, 부들. 그리고 그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던 풍뎅이들이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흥분으로 벅차오르는 마음을 뒤로 하고 저는 매의 눈으로 습지 웅덩이와 수풀과 바짝 말라 죽은 갈대더미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관심을 두는 무리인 거미류들은 굉장히 많은 종이 보였습니다. 갈댓잎을 뒤져 거미줄을 헤쳐 내자마자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각기각색의 거미 유체들은 이곳 토양 동물들의 생물종 다양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썩은 나무 등걸에 사는 돌지네, 눈이 퇴화되어 없는 홍지네, 빨간 벨벳을 두른 것 같이 아름다운 우단진드기(velvet mite)와 같은 토양 절지동물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고 그것들은 제 바지춤 속의 관병으로 모였습니다. 그렇게 한 두시간 쯤을 누볐을까, 호주머니와 가방 주머니에 준비해두었던 병들은 모두 꿈틀거리는 벌레들로 채워졌습니다. 곡물을 다 수확한 농부의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참에 하늘에 새 두 마리가 크게 호를 그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 마리는 호버링(정지비행)을 하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렇게 호를 그리며 날다 정지비행을 하는 새라면.....앗!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맹금류, 황조롱이였습니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자외선까지 볼 수 있어 들쥐의 소변 흔적까지도 탐지하며, 엄청난 속도로 급강하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이를 제압하는 타고난 사냥꾼인 황조롱이는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종이기도 합니다.

첫 조사에서 수많은 절지동물들과 새들을 관찰하고 그 후로도 약 1년 반 가량 습지 조사를 계속 다녔습니다. 말똥가리, 기러기, 할미새, 밀화부리, 청딱따구리, 때까치와 같은 새들도 보았고, 중국청람색잎벌레(단연컨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곤충 중 가장 아름다운 종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부전나비, 긴날개여치와 같은 곤충들은 물론 가는줄닷거미, 적갈늑대거미와 같은 오염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생물종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거미들은 특별히 표본으로 제작하여 거미상 조사 보고서로 준비 하였는데, 주로 스위핑(Sweeping) 채집법으로 채집한 거미들이 많았습니다. 약 100여종가량은 너끈히 되어보이는 엉켜 덩어리진 거미 표본들 사이에서 저는 눈에 띄는 거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새우게거미류로만 동정했었는데, 거미연구소에서 공부했던 선배가 가재거미쪽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때까지 알기로는 가재거미는 우리나라에 딱 두종이 서식하고 그 두 종 모두 복부에 특이한 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도감과 표본한 개체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문득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인터넷을 켜서 WSC(세계 거미종목록)을 확인하고 자료를 뒤져가면서, 그 의심은 반쯤 확신이 되었습니다.

주말이 되자마자, 거미연구소의 박사님께 미리 연락을 취한 뒤에, 그 표본들을 들고 거미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박사님께서 잠깐 표본을 살펴볼테니 맡기고 가라고 하셨고, 얼마 뒤에 행복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종이 맞는 것 같다는 말씀이셨습니다. 혹시 몰라 외부생식기(거미 종을 확인할 때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사용되는 부분)를 촬영하고 박사님께서 보여주신 중국 도감과 일본 도감, 그리고 웹의 자료를 뒤졌습니다. 일치하는 종은 없었습니다. 순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세계에 지금껏 보고되지 않은 최초의 종을 보고하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뜨거운 햇볕 아래 수풀과 넝쿨들을 헤치며 손등과 발목을 처참하게 찢긴 끝에 얻어낸 값진 행운이었습니다.

생명이 춤추는 이 땅에 생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니

그러나 조사를 하면서 마냥 기쁠 수만 없었던 까닭은 이 아름다운 습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공항공사가 추진하는 27홀 규모의 골프장사업 때문입니다. 잔디 몇 종만을 이 넓은 땅 전체에 식재하고 나머지 식생들은 모조리 매립토에 묻어버리며 잔디의 관리를 위해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할 것이며 밤에는 강렬한 야간 조명으로 주변 동식물들을 교란시킬 것입니다. 소수 혹은 부유층의 값비싼 놀이를 위해 생명이 춤추는 이 땅에, 이 땅의 생명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입니다. 골프장이 건설된다면 웅장한 울음소리로 감동을 주는 재두루미도, 날카로운 사냥꾼 황조롱이도, 물가에서 기어다니는 금개구리 맹꽁이도, 아직 그 정체만 간신히 밝혀진 신종거미 금가재거미도 모두 설 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골프장 건설의 이유를 그분들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어른들은 습지가 있으면 새들이 비행기와 충돌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습지가 발달할수록 새들의 서식지는 더욱 안정화되어 공항 쪽으로 날아들지 않습니다. 철새들의 이동경로 또한 김포공항습지를 통해 공항을 빗겨나가는 형태입니다. 만일 습지가 없어진다면 철새들은 공항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합니다. 새들의 충돌위험 때문에 녹지가 없어져야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정작 습지 파괴의 대안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 끝에 대체녹지를 조성한다고 합니다. 골프장 건설의 근거로 매뉴얼에 습지는 공항근처에 부적절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골프장도 동일하게 기피되어야 할 시설입니다. 저에게도 이 모든 근거들은 골프장을 짓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것으로 들립니다. 아이들이 자연을 배울 수 있고, 힐링하고 갈 수 있는 공간에 농약 범벅의 골프장, 건설되어선 안 됩니다.

▲ 김포습지 전경

얼마 전에 습지의 생물종에 대한 정보를 서로 나누고 생물종들을 보호하고자 시민단체들이 모여 ‘친구를 찾습니다’라는 행사를 열어 참가했었는데, 그곳에서 조류 전문가 박사님께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두루미, 기러기와 같은 새들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사진 속 새들의 학명은 알았으나 그들의 목소리조차 몰랐습니다. 박사님은 우리에게 저들이 어떻게 우는지 들어보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부끄러워졌습니다. ‘아. 내가 저 새들을 글로만 배워왔구나...’ 그들을 실제로 보지도 못했고 울음소리도 모르고 날갯짓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사진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그들의 학명과 영문명, 먹이와 크기와 천연기념물 몇 호 인지를 외웠을 뿐 이었습니다. 저는 진짜 황조롱이를 보호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천연기념물 323호를 보호하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지식을 배웠던 것입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내가 죽은 지식으로 저들을 배웠을까....? 괴로움 끝에 답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가까이에 저 새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똑같은 비극은 나의 친구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반달가슴곰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반달가슴곰을 보호하자고, 북극곰의 피부가 까만지도 모르면서 북극곰을 보호하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책상에만 앉아서 필요 없는 지식까지도 모두 머릿속에 우겨넣습니다. 생명이 뛰노는 자연을 본 지는 너무나 오래되어서 자연을 느끼는 법조차 상실했습니다.

생태계가 건강하고 생물종다양성이 매우 뛰어난 김포공항습지는 이런 상황에서 친자연적인 감수성을 확장하거나 자연을 배울 수 있게 해 줄 뛰어난 자연 생태 학습장으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갈댓잎으로 풀피리를 볼 수 있고, 거무튀튀한 나무 등걸 속살에 예쁜 생명을 숨기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숨쉬는 생명의 터전, 김포공항습지에 농약이 쳐지고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가차없이 베어져 나갈 위기의 순간이 직면해 있습니다. 어른들의 어두운 욕심을 막기 위해서 여러분의 관심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미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습지를 지켜나가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어 주세요. 생명의 땅을 지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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