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식을 마친후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김영자 선생님(맨 앞줄)

"고백컨대 감히 사랑하는 내 아그들 내 아이들아~. 아마 이 선생은 배운 천성대로 감미로운 말 한마디 따스하게 안아주기 한 번도 서툴러서 너희들을 무지막지하게 그냥 졸업식 장에 보낼 수도 있다"

상도중학교 3학년 3반 담임 김영자 선생님은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편지에 담아 아이들에게 보냈다.

아이들이 '땡자쌤'으로 부르는 김영자 선생님은 "울컥 복받치는 긴장과 애가 타는 마음을 제대로 전달 못하고 오히려 야속한 표현으로 대신할 것 같다"고 편지에 담았다.

땡자쌤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은 제각각이다. 담임 선생님이지만 때론 친구, 때론 언니 누나다.

졸업식장에서 땡자쌤은 아이들을 안아주며 "잘 커줬다"는 말을 했다. 땡자쌤은 눈물을 글썽였고, 아이들도 훌쩍였다.

땡자쌤은 "내 가르침이 또 다른 역차별을 만들지나 않았는지"라며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너희에게 퍼부은 온갖 경상도식 비뚤어진 애정표현과 욕설을 진심으로 회개한다"며 "너희는 꼬옥~ 눈부실거다. 모든 순간이 꽃몽오리인 것을"이라며 품었던 아이들을 축복했다.
 

김영자 선생님 편지 전문

▲ 김영자 선생님

사랑하는 3반 친구들에게

내일이면 중딩은 끝이라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은 졸업에 야호!~ 고함을 치는 녀석도 있겠고 웬만한 헤어짐의 ‘가는 세월에 곧 묻히겠지’하며 스스로를 추어 올리며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는 너희를 향해 간만에 샘이 한자 쓴다.

내가 과연 너희를 사랑 했을까? 드라마 제목쯤 되어 보이네 문득 지난 장면 하나가 영상 필름처럼 인화되어 돌아간다. 입시와 진학을 볼모로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삶이 7년을 넘자 못난 딸 뒷바라지로 노후에 쏠쏠한 여유를 잃은 샘의 엄마는 덜컥 큰 병이 나버렸다.

지 맘대로 아이들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던 샘은 갑작스런 다중역할을 해내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척 고단한 고등학교 생활을 했었다. 그리하여 적성에도 맞지 않은 중학교를 유배처럼 선택한 마냥 동네방네 잠시만 머물고 간다고 떠벌리며 스스로를 위안했건만 참담한 마음대신 한 아름의 선물처럼 너희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지…

무지막지한 육두문자 사악한 지청구를 재미있다고, 처음 들어봐서 신기하다고, 교사가 저리
날라리가 있나하는 눈으로 잠시 놀란 눈망울로 샘을 바라봐준 선한 눈동자가 참으로 신선하고 예뻐서 화를 내기도 민망했다. 그렇게 때들 묻히며 길들어가는 인연이 마침내 시작되고... 맘은 정말 어여쁨으로 가득해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을 못 배운 생이라, 너희들이 어떨 때는 우스꽝스럽고 천진한 장면에 몇 번이나 뒤에서 키득인적도 많았다.

흔들림 없는 이 연배에 들어섬에도 내 안에 내가 많아 내려놓지 못함이 커서 무슨 행사가 있으면 시끌벅적 소리 내어 열정을 내라고 볼멘소리를 내지을 때도 너희는 사람 좋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꺽실하게 끼리끼리 체육대회, 환경미화, 소풍이든 나름의 즐김을 찾더구나.

싼티 나는 연예병 교사라 교육청 출장이 많음에도 오히려 담임의 공백을 은근히 즐기며 대충 청소를 쏜살같이 끝낸 그 날은 어쩌면 가끔식 찾아오는 휴가 같았겠지. 신혜와 눈치 100단 혜영이가 참으로 중간 중간에 디딤돌 역할을 잘도 해주어서 샘이 그나마 마음 놓으며 이리저리 출장 마실을 다닌 것 같아. 그리고 알토란같은 시간을 좀 더 못내 맘이 외롭고 아직 시린 친구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지 못한 게 내내 걸리기도 하고~

어쩔 때는 너희들에게 속사포처럼 내뱉고는 한참이나 후회했다. 곡식을 더욱 여물에 만든다는 늦가을 비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따라 붓는 오후 내내 밖의 풍경이 흉물스러움으로 젖어 들며 지독하게 지치고 외로운 날이 종종 있었다. 너희들에게 독설 같은 훈계를 한 날은 스스로 진정되지 않은 맘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머리는 이해되나 가슴은 아직 아물아물 시린 또 너희들을 두고 내 가르침이 또 다른 역차별을 만들지나 않았는지? 샘의 서푼짜리 보잘것없는 관념이 자칫 가시적 구경거리 가르침으로 무너지나 싶어 새가슴으로 저려 가는 날도 있었다.

고백컨대 감이 사랑하는 내 아그들 내 아이들아~.
아마 이 선생은 배운 천성대로 감미로운 말 한마디 따스한 안아주기 한 번도 서툴러서 너희들을 무지막지하게 그냥 졸업식 장에 보낼 수도 있다. 늘 습관처럼 울컥 복받치는 긴장과 애가 타는 마음을제대로 전달 못하고 오히려 야속한 표현으로 대신할 것 같다.

하나도 같음이 없는 너희들이다.
그럭저럭 제법 나이를 먹어 이별에 익숙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헤어짐은 언제나 새롭고 무겁게 다가온다. 너희들이 떠난 교실을 보며 주책없이 달라붙는 그리움이란 못된 놈과 서서히 힘든 싸움도 해야 하고 그러다가 세월의 무게와 코앞에 닥친 현재의 분주함으로 부지불식 또 익숙하며 새 아이들을 맞이하고...

죄가 크면 회한도 많은 법! 너희들을 옥죄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이 될까하고 구구한 변명 늘어놓는다. 가르치면서 오히려 배운다는 선배 교사들의 진부한 이론이 내 것이 된지가 제법이고 너희들의 부끄러움이라고 몰아붙인 이기심도 실은 내 일상이 된지가 꽤 오래다. 허나 숨을 쉴 때마다 너희들을 위한 내 선택과 신념을 믿었듯이 샘의 집착이 사랑이었다고 뒤늦은 변명을 해본다.

새로운 세계가 까마득해서 두려움의 나날을 새고 있는 누군가도 분명 이 괴로운 오늘이 너의 발판이 될 거다. 너희들의 힘을 믿고 너희들의 사랑을 믿는다. 너희가 내리붓는 열정 하나 하나에 신의 은혜로움과 가호를 기다리면 너희의 몸뚱아리에 천운이 뒤따르고 너희들의 펜대에 행복의 마술쇼가 펼쳐지길~.

최선을 다하며 그 땀 맛을 사랑하고 그 맛에 또 살아가는 3반의 행복돌이, 행복순들이 될 것을 믿는다. 그동안 너희에게 퍼부은 온갖 경상도식 비뚤어진 애정표현과 욕설을 진심으로 회개한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너희는 꼬옥~ 눈부실거다.
모든 순간이 꽃몽오리인 것을...
사랑한다
너희들이 천진한 웃음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악한 담임 땡자샘 ^^*

박웅석 기자  webmaster@e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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